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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좋은 것, 믿음이 좋은 것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12-11 (월) 14:24 조회 : 48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의 사함을 받게 된다는 이 큰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종교가 깊어지면 스스로 홀로 서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신앙이 깊을수록 그를 더욱 붙들고 의지하게 됩니다. 어쩌면, 기독교 신앙은 홀로서기가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랑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그분에 잇대어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믿음 좋은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예수님께 나를 실어내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주님의 은혜이며, 앞으로 살아갈 것도 모두가 주의 은혜이며,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바울처럼 행하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었음이 확실하고, 구원의 선물을 얻었음이 분명할 때, 그런 이들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확연히 달라짐을 봅니다. 스스로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은 사실을 잊어 버리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며 주님께 붙어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신앙생활 잘하는 비결, 신앙이 좋아진다는 것, 신앙의 연한이 더해 갈수록 오직 주님만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인에게는 뚜렷한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중심에, 그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글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영감된(Inspired) 말씀입니다. 말씀이 살아있음은, 그 말씀에 인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찾아오셨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들었다가 아니라, 말씀이 내게 왔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내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인해, 지식만 늘어난 게 아닌, 참된 인격적 변화가 스스로에게 나타났음을 열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로 묶는 성령의 간섭속에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살길이 없다고 믿기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올 때, 주께서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함으로, 그의 인격중심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후에는, 전인적 변화를 드러내게 됩니다.  

신앙이 좋고, 믿음이 좋은 사람, 말씀을 사랑하며 자신의 전인격을 말씀속에 담글 수 있는 사람에게 한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결코, 성령의 교통, 하나님앞에 나아오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앞에 나아올 때부터, 비로소 치유되고 회복되고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해도, 계속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튼실해지고 온전해집니다.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듣지 않고서도, 제대로 믿음을 가진다거나, 그 믿음이 견고하여 질 것이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믿음은 가지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말씀을 계속 들으며, 이슬비가 내리듯 어느덧 젖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아무리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도, 마음을 말씀으로 채운 사람은, 그 마음이 불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앞에 그의 음성을 들으며, 선물(Grace)처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주의 교회에 나아가 예배가운데 거하지 못함을 견뎌하지 못합니다. 

예전, 한국의 시골에 살던 어떤 처녀가 불신 가정에 시집을 갔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들고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을 시댁 식구들이 하나같이 핍박을 했습니다. 엄청난 핍박이 나타났습니다. 구박하고 때렸습니다. 나중에는 주일이 되면, 교회에 못가도록 집에 포로처럼 잡혀있도록 했습니다. 이 처녀는 매일 집에서 울었습니다. 밥 지을 때마다, 밥 위에 십자가를 그으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주변 동네 세상사람들이 수근거렸다고 합니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교회 안가면 그만이지, 왜 우냐?”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 슬픔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며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지 않고, 예배드리지 않고, 말씀을 듣고 보지도 않으면서 스스로를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은 중직자의 신분을 가지고서도 여전히 술 담배에 노출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리더가 되었을 때, 아이들 딱지만도 못한 교회생활 경험을 신앙의 절대 경험으로 오해한 채, 어린 새신자들을 자기와 같은 구렁텅이에 밀어 넣습니다. 같은 무리가 필요했을 듯 합니다. 함께 망하자는 것입니다. 

온전한 신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믿음 때문에 울지를 않습니다. 왜 울어야 하는 지를 모릅니다. 신앙을 아주 얕고 천박한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교회를 회사처럼 만들었습니다. 설교자를 고용인을 대하듯 하면 안됩니다. 고용주가 고용인 직원에게 듣는 말씀이 어찌 삶을 바꾸는 능력이 되겠습니까?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교회의 유익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편리와 지위, 영향력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늘 위에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말씀앞으로, 교회앞으로, 예배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한번 더 자신을 위해 주의 교회에서 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