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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12-11 (월) 14:33 조회 : 133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은 받으셨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드리는 자보다 받으시는 분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내 시각과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와 드린다고 해도, 받는 분이 안 받으시면 별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가인의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최초로 하나님을 예배한 사람, 아벨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형에게 맞아 죽은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도 이렇게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예배를 실패한 사람들이 굉장이 그 사람을 질투하고 미워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예배 잘 드리자는 사람, 예배를 빼먹지 말자고 하는 사람, 야유회를 가거나 소모임을 해도 꼭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마치자는 사람, 그렇게 공동체의 분위기를 끌고가는 사람은 여러 가지 애매한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을 봅니다. 

왜 예배에 힘쓰지 않는 사람들, 예배에 실패한 이들은 예배에 온전한 이들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예배를 성공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사람들을 이 세상 사람들, 혹은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닮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별나게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예배를 그만 멈추라고 합니다. 멈출 수 없으면 대충 형식적으로 그냥 드려라고 합니다. 

실제로, 예배의 거룩성을 강조해서 말하면, 율법주의 혹은 교회주의자로 매도당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런 잘못된 관점을 새롭게 하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성경자체를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자체가 드러내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배보다, 교육, 선교, 구제 등을 먼저 말합니다. 예배는 모두가 드리는 데, 당연히 드리는 데, 특별히 따로 관심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를 생각해봅니다. 선교를 교회의 최우선 목표로 세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최종목적도,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통해 이 땅에서도 복되게 살고, 죽어서도 영생 복락을 얻고 누리어 보라는 로또 복권같은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단, 한번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했던 이가, 찾아와주신 구원의 은혜로 인해, 그 한 영혼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고 찬양하며 예배하므로, 자신의 영광과 땅의 영광만을 구하던 이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선교입니다. 선교의 궁극적인 마지막 목표도 예배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찾아와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혹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구제와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교회의 최대 목표로 힘주어 말하기도 하지만 예배보다 앞세우지는 않습니다. 예배가 없는 구제, 예배가 없이 행하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은 또다른 자기의를 쌓는 것이 될뿐,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예배를 받으시면서 자신의 영광만을 구하는 독재자같은 이기적인 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고 깨닫기에는 신학적인 접근만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헤가 필요합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오랜시간 목회를 하신 유명하신 분임에도, 신학적인 사상 한가지를 근거로 성경이 말하는 ‘성전과 교회’의 차이점을 부각해서, 성도의 교회생활을 엉터리처럼 치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신학으로의 접근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신앙으로의 접근과 이해, 온전한 순종과 복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기만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을 지으신 목적에 합당한 예배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예배생활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예배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일을 위해 예비되었음을 알고 주객을 전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업하는 이유, 공부하는 이유,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는 이유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모아져야 합니다. 

부하면 부한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배우고 예배안에 삶을 녹여낼 때, 삶의 모든 일들에 대해 지헤를 공급받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도울 사람을 찾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친구도 찾아가고, 은행도 찾아가고, 변호사도 찾아가고, 정부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의 순서는 먼저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예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머지 일을 보는 것이 참 순서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은 한결같이 마침내 자신의 삶도 Finish Well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꾸준한 배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항복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목회 마저도 자신의 소견을 적당한 말씀으로 둔갑시켜, 인간적인 목회의 열매밖에는 맺을 것이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