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f70c8bc4a77a41c68644d025012f1f_t4Dsv5fNHx1THGTaKo11PbM6.gif

총 게시물 156건, 최근 0 건

믿음없음을 증거하는 일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12-11 (월) 14:35 조회 : 120
믿음없음을 증거하는 일들


신앙생활의 연한이 깊어져도, 제자가 아닌 여전히 무리에 속한 이들이 많습니다. 많은 말들을 하고 수많은 맹세를 하고, 서약까지 하였을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의 뜻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신앙은 선택이고 방향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못할 선택과 방향을 택함으로 마침내 그 인생이 아름다워지지 못함을 봅니다. 

신앙의 아름다움은 ‘한결같음’인데, 언행(言行)과 신행(信行)에 한결같지 못함으로 추한 인생으로 귀결됨을 봅니다. 신앙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가장 뿌리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을 증명하는 리트머스 용지같은 기준표가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입니다. 쉬운 단어로 표현하면, ‘돈, 세상에서 거들먹 행세할 수 있는 영향력, 육체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연륜, 목회자, 교회의 규모와도 전혀 상관없이, 개인 각자의 신앙 인격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돈 앞에서 ‘믿음 없음’의 정체를 나타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해서 앞으로 남은 노년의 계획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식은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를 믿을 수 없기에, 다른 증거물을 내어놓을 것을 요구합니다. 말로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증거라도 내놓으면 믿겠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은행 어카운트와 비밀번호를 묻습니다. 진짜 자기를 사랑한다면 재산의 명의를 자기 것으로 바꾸자고 합니다. 생명을 주신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이야기해도 자식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물질과 얽히게 되면, 신앙과 가족, 지나온 믿음의 여정들 조차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함을 봅니다. 

두번째는 주님의 사명 감당하는 것을 보면, 그의 믿음 없음의 증거가 보입니다. 연말만 되면, 교회마다 ‘연말증후군’이라는 게 있습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올해 까지만 사역 하겠노라고 사임서를 들고 오거나 혹은 구역변경 등과 같은 청탁을 위한 방문이 있습니다. 아직도 두달이 남았지만, 서서히 굼불을 때듯이 이런 저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딱 잘라 말하면 섭섭해 하실 분들부터, 강권하여 설득해야 하는 분, 빨리 승낙해주어야 교회의 평안을 지킬 수 있는 분들까지 나름의 방법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목사는 결국 마지막에는 ‘분노, 탄식, 안타까움, 회한, 자책, 회개 등등’의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을 정리하게 됩니다.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인내로 참고 지나다 보면, 어느덧 새해가 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변함없이 목회의 연한에 관계없이 매년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느 선배 목사님은 교인들을 향해, 버럭 외쳤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연말에 회사에서 진급하고 일이 맡겨졌는데, 연말마다 사장님 찾아가서 일 못하겠다고 매년 말하는 사람 있습니까?” 더 힘을 주어 말합니다. “회사나 직장에서는 못하겠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그렇게 목숨걸고 못한다고 합니까?” 그러자 옆에 있는 권사님이 날름 말을 받아 대답합니다. “목사님 거기는 돈을 주는 곳이고, 이곳은 돈을 내는 곳인데, 다르지 않습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린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반이 다른 답이 나온다면, 그 문제 자체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들으시면 통탄하실 말씀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있었던 사건과 사실의 문제입니다. 애매한 일로 고통스런 불면의 밤을 지낸적이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일이 악한 현실가운데 드러났습니다. 본인은 그런 애매함마저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허용’이라는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악한 것은 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허용속에 모든 것이 되어져도, 악은 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허용하심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보재 부지깽이로 쓰여진 ‘바로왕이나 앗수르, 바벨론 등’을 들어 선한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사용하셨지만, 그렇다고해서 바로, 앗수르, 바벨론이 악이 아닌 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품은 악은, 곧 풀의 베임처럼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건에 대해 Fact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Fact라고 해도, 믿는 바에 따른 선택의 문제에 불과함을 봅니다.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해 보입니다. 진리를 구하는 신자들이 진리자체보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거짓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도 의리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기준해서 모든 것을 들여다 봅니다. 악이 힘을 얻고 득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악인은 저들의 운명이 하나님앞에서 들의 풀처럼 베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Fact를 오용하는 것,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범죄함이며, 먼 훗날 심판대앞에서 하나님께 해명해야될 일입니다.     

믿음없는 세대의 믿음없는 악함이 이기는 세상앞에서도, 주님의 제자들이 갈길은 선명합니다. 은혜가 머무는 자리에 나아가며, 인생을 통째로 드려도 아깝지 않을 은혜의 결단을 매순간 하면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요셉처럼 감옥은 가지 않았잖습니까?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고통은 겪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저 열심히 주님을 따라가며 주님이 지신 십자가까지 이르러 주님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하고 살면 될 일입니다. 그 증명이 조금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곧 만나게 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