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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별일 아닙니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4-02-12 (월) 13:38 조회 : 56

주님 안에서 별일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내외적인 삶을 도우십니다. 낙심하여 기도할 수 없을 때 성령께서 대신 기도하십니다. 엄청난 절망과 고통에는 숨도 쉴 수가 없습니다. 말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성령님이 친히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전적으로 100% 하나님 쪽에서 모든 것을 다 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고통의 문제앞에서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제거해 주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도와주신다는 헬라어는 쉰안틸람바노인데, “함께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문제와 연약함을 하나님이 함께 잡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나의 문제와 어려움들, 그로 인한 모든 연약함들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잡고 계신다는 의미인데,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 두시지도 않지만, 반대로 우리를 로봇처럼 가만히 세워두고 하나님이 전부를 다 행하신다는 말도 아닙니다.

   

모든 인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연약함 속에 살아가게 되는 데, 그때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를 의지하고 찾으므로,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 인생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삶의 문제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앞에 나아와야 합니다.주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아야 합니다. 주님이 지나시는 길에 드러누워야 합니다. 필요하면 나무위에라도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얼마나 많은 소경과 앉은뱅이, 병자들이 많았습니까? 그들 모두가 고침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예수님앞에 문제를 드러낸 이들이, 주님의 치유의 기적과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치유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을 때 길이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문제가 생길 때 주님의 성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나처럼, 여호와의 전에 나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점 많은 연약한 인생을 도와주시는 분, 주님이 그 문제를 함께 붙잡고 고치시고 싸매시며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을 때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과 약함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돌아 보시고 더욱 귀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실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천국소망을 주십니다. 아무리 약하고 추한 자도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있습니다. 천국소망입니다. 그 영광의 가치는 이땅의 모든 일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80, 90년 동안 연약함이 계속될지라도 영원히 받을 하늘나라의 영광과 천국 소망과 부활 소망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깨달을 때, 우리는 오늘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연약함 때문에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고난과 연약함이 아무리 심해도 장차 우리들이 누릴 천국에서의 소망과는 비교할 수 없기에, 기다릴 수 있고, 마침내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300년간의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그들이 목숨을 내놓을지라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천국소망, 부활의 소망입니다. 죽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천국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 소망을 바라보는 자는 연약함 때문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연약함이 우리를 죽음의 끝자락까지 몰고가서 우리에게 항복을 받으려해도, 영원한 소망안에서 오히려 넉넉하게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늘을 생각하고 살면 이 땅도 덤으로 얻을 것이다.” 참 멋진 말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히 누릴 것을 생각하면 이 땅도 덤으로 옵니다.

 

궁극적으로 천국의 소망을 온전히 품은 그리스도인들은, 땅이 주는 자신의 연약함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의연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눈과 장거리 마라토너의 호흡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전체를 보는 눈은 인생살이에 돛이 되고, 마라토너의 긴 호흡은 삶의 균형추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바라보지 못하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행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연약함 속에서도 결승선 너머를 바라보며 긴 호흡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예배자를 핍박하는 정부에 대항했던 손현보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힘들지 않으십니까?” 그분의 대답이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별일 아닙니다. 별 거 아닙니다.” 당당한 그분의 모습속에 독수리의 눈과 마라토너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국소망, 부활의 소망이 내외적으로 조여오는 압박감들앞에, 약하여지지 않고 외려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일들로 인해 더욱 귀하게 쓰임 받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66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 새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 앞에 항상 있듯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들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안에서 연약함은 오히려 강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천국 소망을 갖게 하셔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강건함속에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받으시고, 우리 심령에는 한없는 기쁨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