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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세상에서 주의 교회로 출애굽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07-23 (일) 13:41 조회 : 162


날마다 세상에서 주의 교회로 출애굽 - 교회, 참된 생명과 기쁨, 회복 -

 


성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출애굽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의 땅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간 것인데,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육에 속한 저주의 땅을 떠나, 신령한 삶으로 나아간 것이다. 고단하고 소망 없는 세상에 묶인 바로의 무거운 쇠사슬을 벗어내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믿음, 소망, 구원을 향해 나아간 특별한 은혜의 사건이다.

 


교회, 출애굽 성도의 모임

그러나 출애굽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를 대하는 모세의 말을 통해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던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간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거룩한 예배자의 걸음이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를 세상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출애굽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애굽 같은 세상의 끈적끈적한 유혹과 익숙한 삶에서 오직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겠노라는 결단과 순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새로운 방향, 새로운 삶을 결단하고, 한결 같이 주의 말씀과 성령의 앞선 인도에 매 순간 겸손한 순종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 백성됨의 영광을 보는 것이 신앙이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에서 출애굽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와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한다. 신앙의 동지들과 교회를 이루고, 교회와 함께 살아가다가, 교회와 함께 끝나는 삶이다. 세상으로부터 교회에 나아옴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주셨고 불러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며 영원한 본향 천국을 향하여 충성하다가, 마침내 교회 안에서 그 생애를 마침으로 천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주의 전, 교회를 향한 삶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삶의 한가운데 항상 교회가 있다. 또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신앙은 방향이다. 참된 신앙인은 항상 주님의 전인 교회를 향하는 신앙으로 살아간다. 어떤 분은 교회가 은혜로와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곳이 아니다. 재미나 친분관계 때문에 나오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구원을 받으려고 나오는 곳이다.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으려고 나오는 곳이다. 교회는 이미 생명과 구원, 천국과 축복을 바라보는 자들이 나오는 곳이다. 한마디로,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죽는 것이다.

 

애굽에서도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애굽에서의 삶은 죄인으로 사망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 삶에는 절망, 근심, 다툼, 괴로움만이 가득할 뿐이다. 영생이 없기 때문이다. 영생이 없으므로,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게 된다. 육체의 생명만을 생각하니 물질적이 된다. 조급하고 답답하고 허무하며, 살았으되 죽음에 이르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출애굽한 성도의 삶은 생명과 꿈이 있는 삶이다. 영생에 대한 소망과 사랑이 있는, 생기 넘치는 삶이다. 교회의 몸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요한 일서 511절에서 12절의 말씀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했다. 아들이 있어야 생명이 있고, 그 아들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주님을 향한, 그의 아들을 향한 탈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주님께 나아오면 살 수 있고, 교회에 나아오면 그 주님을 만나고, 주님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행복, 교회로 피함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탈출하려고 철조망을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살기위해 세계 곳곳으로 흩어 보내졌다. 그러나 그 삶이 그 삶이더라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미국으로 피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하는 미국이라고 해서 그 삶이 만족하고 온전했을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미국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피해야 되고, 주님께로 탈출해야 되고, 주의 교회로 피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생명과 축복과 형통과 거리가 먼 삶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쪽으로 탈북을 했는데, 많은 이들이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남한이 낙원인줄 알았는데, 고향 떠난 아픔을 술로 달래다가 술이 그들의 꿈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저들가운데도 북한을 넘어 남한으로 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나아와 주님의 교회로 피한 이들에게는 영생의 복과 삶의 형통이 주어진 것을 본다.

 

세상, 어디에 행복이 있을까? 행복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오직 주님께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사는 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처음부터 주님을 만날 수는 없다. 그때, 그는 그의 발걸음을 주의 성전, 하나님의 교회로 옮기면 살아나는 역사을 맛보게 된다. 오직 주의 성전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없다. 지식과 과학에도 생명이 없다. 어떤 정치지도자나 대통령도 생명을 줄 수 없다.


 

생명의 밝은 빛, 교회

말기암 진단을 받고 나면, 죽음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밥맛도 없고, 사람을 만나는 기쁨도 없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더 허무해 하고 불평과 한숨을 내쉰다. 이유가 무엇인가?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병을 가진 환자라도, 주님의 생명이 저들 안에 있는 이들은 삶의 자세와 태도가 완전히 다른 것을 본다. 예수의 생명의 빛이 암병의 어두움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교회에 암으로 투병 중 소천하신 집사님이 계셨다. 온 가족이 남편이자 아버지인 집사님의 마지막을 주의 종의 손에 맡기면서, 토네이도가 덮쳐서 전기가 들어오지 못하는 중에도, 주의 전에서 천국환송예배를 드리기를 원했다. 아버지 집으로 피하고, 아버지 집에서 천국문을 열고 들어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신앙가족의 모습이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의 빛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모두에게 은혜가 되었고, 영광스런 생명의 빛가운데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았다. 보내는 이들에게도 생명의 밝은 빛가운데 소망을 품는 모습이었다.


 

참된 행복, 주와 그의 교회에

하나님을 떠난 현대인들의 삶에 행복이 없다. 잘 먹어도 기쁨이 없고, 좋은 옷을 입어도 잠간의 즐거움은 있어도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없다. 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가? 마음이 답답하고, 속상하고 괴로운 심정을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저들 안에 생명이 없으므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이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회복해야 한다. 생명의 주님 품에 안기면, 밥도 생명의 밥이 되고, 옷도 생명의 옷이 되고, 잠도 생명의 잠이 되는 것이다. 밤은 밤이어서 좋고, 낮은 낮이어서 좋다. 주안에 있을 때, 모든 생활이 행복하고, 모든 만남이 즐거우며, 이 세상이 천국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생명의 주님과 교제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침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삶에는 형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생명의 주님을 만나는 곳이 어디인가? 주님의 몸된 교회이다. 몸을 움직여 교회 가운데 나아와야 한다. 주님의 교회에 나아오면, 생명이 역사함을 느끼게 된다. 온갖 죄악과 저주아래있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생명이 있으면, 반드시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열매가 맺히며, 열매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생명과 축복의 터전인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한 때에 불과하다. 반드시 주의 몸된 교회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교회가 살면 다 산다.

구약의 야곱을 보라, 하나님을 떠나 잘 사는 것 같았지만 형통이 아니었다. 야곱이 살던 세겜은 살기 좋아보였지만, 영적으로 불통한 생활이었다. 하나님의 약속도, 예배도, 기도도 없었던 곳이다. 결국, 큰 시험과 환란이 찾아왔다. 험악한 세월이었다. 성공한 듯 했으나, 성공했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벧엘로 올라갔을 때 살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집으로 피하지 않고, 아버지를 예배하지 않고서 인생의 살길은 불가능하다.

 

교회생활이 온전하고 복될 때, 그 복을 받고 누리며 형통하여 진다. 주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교회로 나아와야 한다. 삶의 곤고한 것들로부터 출애굽하여, 주의 전으로 피해야 한다. 주의 전에서 부르짖고 기도하며, 부지런히 말씀을 먹을 때, 만복의 근원이신 주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성전에 나와 구하는 대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면, 사람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주님이 들으시고, 위로하시고,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