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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변화, 세상을 이기는 말씀의 능력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10-28 (토) 08:52 조회 : 62



은혜의 변화, 세상을 이기는 말씀의 능력

 

 

어떤 인생도 은혜 가운데 변화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은혜의 방편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 말씀과 기도가운데 인생의 참된 변화가 시작된다. 말씀이 그를 책망하게 되고 교훈하게 될 때, 인생은 교정되어지고 바르고 온전한 의의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말씀과 기도로 회복된 사람

 

성경은 말씀과 기도로 회복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왕하 18장에 히스기야 왕이 등장한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국보 1호라고 말할 수 있는 모세의 놋뱀을 느후스단, ‘쇳덩어리일 뿐이라면서 그것을 쳐 부수어 버린다. 백성들이 그것을 우상처럼 받들어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싫어 하신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모세의 놋뱀이 어떤 것인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 중에 불뱀에 물려 죽게 되자,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 보는 이마다 생명을 얻었다는 증거물이다. 얼마나 귀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그런 놋뱀을 단방에 해치워버린 것이다. 아무리 가치가 있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으면, 헛된 것임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행위였다.

 

또한 그는 산당을 제거했다. 산당을 제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한국의 서원처럼 당시 정치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아지트로 여겼던 그런 곳인데, 그것을 파괴해 버린 것이다. 가만히 두면 조용할 일을, 애써 왜 분란거리를 왜 만들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님이 원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그는 한마디로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어떤 일이라도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그냥 밀어 부치고 일을 막 저지른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행한 히스기야를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히스기야를 엄청나게 형통하고 평탄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

 

 

환경을 초월하는 말씀의 힘

 

그런데, 그가 과연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사람이었느냐를 생각해보면, 전혀 그런 조건들에 부합되지 못한 사람이 히스기야였음을 알게 된다. 히스기야 앞에 왕이 누구인가? 아버지 아하스였다. 아하스는 극악무도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아들 중 하나를 잡아다가 인신 제사를 드릴 만큼 악한 왕이었다. 죽을 짓을 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셨다.

 

신앙은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 앞에 죽을 짓을 하고, 회개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결국 죽게 된다. 그렇게 갑자기 아버지가 죽자,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사람이 히스기야였다. 그러면,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악한 일들을 보며 자란 히스기야가 어떻게 전혀 아버지와는 반대의 삶,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형통한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에 특별한 것이 있었는가? 인간적으로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가장 명확하고도 분명한 사실 한가지를 귀납적으로 찾아 본다면, 그것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음성이 끊임없이 들려졌다는 사실이다. 들리지 않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는 결코 선한 분별력을 가질 수 없고, 어떤 기준에 따라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악을 이기는 거룩한 방파제

 

그러면 그의 귓가에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들려지게 되었던 것일까? 전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악한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늘 말씀의 종을 예비하시는데, 그때 당시에 누가 있었는가? 하나님의 종 이사야 목사님(?)이 계셨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들의 시대는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들이 그를 통해 이스라엘에 증거되고 왕들에게 교훈 되었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아들을 인신 제사하는 그런 환경속에 자랐을 지라도, 그의 귓가에 들려진 이사야 선지자의 음성이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짐으로, 악의 오염을 이겨내는 거룩한 방파제가 되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 그 후에도, 그는 항상 위기를 만날 때마다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의 영혼이 살고,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세와 태도이다. 말씀앞에 겸손한 자의 모습이다. 사람 이사야를 의지한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들려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다.

 

 

악한시대, 더욱 강력한 말씀

 

그의 어머니도 등장한다. 스가랴의 딸 아비야이다. 이 스가랴는 소선지서에 나오는 스가랴가 아닌 또 다른 선지자이면서 제사장을 말한다. 스가랴의 딸이라는 말이 규정되고 그 이름이 아비야라고 특정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어머니의 신앙과 삶이 온전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게다가,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어머니라고 할 때, 어머니 아비야의 선한 영향력을 그가 경험했음도 분명하다.

 

한마디로,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엉터리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엉터리 같은 아버지 밑에 살아도, 좋은 말씀의 선생님과 엄마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씀을 자식에게 바르게 가르치고 은혜를 끼치게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를 축복하시고, 형통하고 평탄하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이 되는 것을 본다. 어디를 가든지 온전한 믿음의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게 하신다. 한마디로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는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그 자식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인생을 변화시키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술을 못 끊느냐? 우리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이기 때문에 내 몸에는 피가 아니라 알코올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부모가 나의 인생을 잘 뒷받침하지 못해서 내가 인생을 구질구질 어렵게 산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오직 한가지에 순종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처럼 그 귓가에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될 때, 실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히스기야에 대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준행한 그의 한가지 태도가 모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말씀으로 승리하도록 그의 인생을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성전을 사랑한 히스기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준행하는 이들의 또 한가지 특징이 있다. 주의 성전을 사랑하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며, 성전과 밀접하게 삶의 은혜와 축복을 드러낸 사람이다. 앗수르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에, 그는 성전에 가서 항복 문서를 펴놓고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셔서 그 많은 대군을 한순간에 물리쳐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대로 믿으며, 히스기야의 신앙을 칭찬하면서, 우리 자신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교회로 달려가 울 수 있는 복된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것을 성전과 교회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이상스런 은퇴 목회자도 있지만, 성경을 신앙이 아닌 신학으로 판단하는 편협된 사상앞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따름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주님의 교회로 달려갈 수 있는 사람, 넘어져도 하나님의 교회 쪽으로 넘어질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대가 수상할수록 더욱 주의 말씀에 자신을 매고, 주의 전을 향해 쉼없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 히스기야처럼 어려운 환경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권세를 넉넉하게 가지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권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해 말씀을 선포

 

오늘날 이사야와 같이 온전케 하는 목자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많은 성도들이 목회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분으로 오해하는 경우 많다. 그렇지 않다. 목회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분이 아니라, 나를 온전케 하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으로 그렇게 하는가? 말씀이다. 그 말씀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다. 말씀 속에 책망이 들어가고 교정시키는 은혜의 가르침들이 들어가는 것이 합당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목회자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이 자신의 영혼을 책망하게 될때에, 마침내 그 자신이 교정되어 주님 앞에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으로 정결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세상을 이기는 형통함의 복, 사명자로 쓰임받는 복을 주실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져야 된다. 하나님 말씀을 매 주일 내 영혼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질 수 있어야 한다. 강단의 말씀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게 될 때에, 마침내 성령의 조명하에 비추어져서 자신의 죄악이 보여지고, 그것을 회개하고 깨끗해졌을 그 때에, 하나님은 그 개인과 가정과 가문, 교회,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