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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의 축복 - 은혜와 감사, 깨달음 -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12-11 (월) 14:50 조회 : 148
연약함의 축복 - 은혜와 감사, 깨달음 -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목사는 고난이 성도에 삶에 주는 유익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정원을 오래 거닐수록 우리의 몸에 꽃향기가 깊이 배듯이, 성도에게는 고난과 약함이 많을수록 예상할 수 없는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의 향기가 우리의 몸에 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약함과 고난의 시간이 원망과 불평의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향기를 묻히고 맛보며 누릴 기회가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은혜가 임하면, 연약함의 그 쓴맛이 단맛 되고, 애물단지가 보물단지 되며, 근심거리가 간증거리가 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약함, 고난의 유익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사랑과 인정 가운데 완벽한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와 약점 때문에 더 악하게 남을 해치면서 상처를 드러내기도 한다. 분노와 증오 속에 살아가는 악당이나 괴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약함 때문에 더 귀하고 복되게 쓰임받은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한국 교회를 지도하고 이끄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수많은 약점이 있지만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폐결핵을 앓았던 분, 암에서 치유를 받은 분, 가정의 문제나 큰 실패 등 약점들이 있지만 삶의 변화와 함께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피를 토하듯이 설교를 하셨다는, 조용기, 옥한흠,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들의 간절함도 마찬가지다. 폐병이라는 질병으로 인해 절로 피를 쏟는 고통 가운데, 그 약함이 더욱 간절한 부르짖음의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태어나 보니 둘째 엄마의 넷째아들로 결손가정에서 자랐지만, 전도와 예배에 앞장서는 부산 세계로 교회의 손현보 목사,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헤어져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늘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기용이 불쌍해서 어쩌노”라는 말을 듣고 자랐으나 지금은 성결교단 최대의 교회를 이룬 신길교회 이기용 목사, 문경 시골 촌사람으로 아파트 한 채값의 병원비를 써 가면서 병으로 악전고투했으나, 현재는 장로교 고신 교단 최대의 교회를 이룬 포도원 교회 김문훈 목사, 부양능력이 없는 알콜중독의 아버지로 인해 사과밭 창고방에 5남매가 살았던 대구 대명교회 장창수 목사 등, 이루 말할수 없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기적의 재료, 은혜의 재료로 사용하여, 주님의 맛과 향이 나는 인생으로 자신의 삶을 디자인한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삶의 연약한 조건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절제와 노력과 성실함이 없이 어쩌면 막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감옥을 들락날락 하여도, 자기 인생에 대해 핑계거리가 충분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은 그런 조건속에서도 더 귀하고 복되게 쓰임받고,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된 것을 본다. 이들의 공통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아닌, 참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경험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영혼을 온전히 덮어버렸을 때, 그 영혼이 직면했던 삶의 다양한 질곡같은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자기 신격화의 무용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자기 신격화’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성향인데, 자기 자신을 꽤 괜찮게 생각하고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을 때에도, 얼마든지 너 혼자 ‘고난을 이길 수 있다, 힘을 내라’는 식의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서점의 가장 많이 팔리는 책중의 하나가 ‘자기계발서’이다. 자기 자신을 믿는 그 스스로의 믿음으로, 능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기 신념화의 한 부분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의 끝은 무엇인가? 최상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자수성가’이다. 그래서 자수성가한 이들을 보면, 대개 자기 자신의 의지가 강하고 상당한 자기 높임의 교만이 가득한 것을 본다. 그 결과 이들은 보이지 않는 엄청난 영적손해를 보게 된다. 복음의 은혜가 찾아들기 어려워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어려움들이 주님을 더욱 만날 기회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큰 벽을 쌓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자기주도적인 삶과 성공 신화가 만날 때,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간절함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인생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과 한계를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럼, 연약함이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연약함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연약함은 감사의 조건이 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강하고 잘나고 부족함이 없어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보다, 차라리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더욱 귀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닐까?


더욱 의지함, 겸손, 깨달음 

신앙은 해석이고, 해석이 되면 삶의 고난도 넉넉히 견딜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약함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영적으로 더 강해지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고 연약함을 주신다. 연약함이 없다면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더 의지할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죄성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하면 강할수록 감사가 사라진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잊어버린다. 그런데 오히려 약하기 때문에, 그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더욱 의지하는 것을 본다. 연약함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어, 나의 연약함위에 능력의 하나님이 마음껏 임재 역사하심으로, 나의 능력보다 더 위대한 일을 넉넉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분명히 그 연약함은 축복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자고하지 않고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리라고 연약함을 주신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없애주시지 않았고, 오히려 바울이 받아들이게 하셨다. 바울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성지 순례중에 그리스에 가보면 바울 동상이 있는데, 키도 작고 꼽추에다가 대머리에 맨발 동상이 있다. 마른 체형에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만들어두었다. 아마도 그가 받았던 수많은 고난들로 늘 몸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질병의 연약한 고통속에 살았음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졌다.


가시의 축복

실제 바울은 하나님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제거해 주시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 바울에게 은혜가 임했고, 은혜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의 이유를 깨달은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신 그 은혜를 만족하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은혜를 깨닫고 나면, 문제가 해석이 되기만 하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음을 본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많은 은사와 재능을 제어할 기제로, 자신의 교만을 제어하여 겸손하게 계속해서 주님 손에 붙들려 쓰임받도록 하기 위해 주신 가시임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차량도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유명무실한 것이 된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게는 교만을 제어하고 겸손을 지킬 수 있는 뭔가가 있을 때, 귀하고 복되게 쓰임을 받는다. 바울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가시는 이러한 제어장치를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이기에, 이것은 바울에게 불평의 조건이 아닌 감사의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 손에 붙들려 마음껏 쓰임받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같은 것이 그의 연약함이었던 것이다.


깨어진 그릇, 은혜 감사

에디오피아의 자비량 선교사이자 복음 사역자인 김태훈 선교사는 스스로를 가리켜 “깨어진 그릇”이라고 소개한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간담췌 외과에서 촉망받던 의사였던, 그에게 복음이 들어갔다. 은혜를 깨달은 것이다. 복음이 들어가고 은혜를 깨닫게 되면, 반드시 사명에 이르게 됨을 본다. 축복의 과정이다.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사명에 이르지 못하면, 그 은혜가 쉽게 잊혀지고 헛된 것으로 끝나는 것을 본다. 그런데 그는 그 은혜앞에 사명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빛나 보이던 미래를 내려놓고 방글라데시와 남수단을 거쳐서 에디오피아로 선교를 위해 건너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1년 동안 현지적응을 하고 본격적으로 의료사역을 하려는데 그만 파킨슨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외과 의사로는 사망 진단을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외과의는 일명 ‘칼잡이’로 불리는 서젼(Surgeon)인데, 파킨슨병은 완전히 그의 미래를 암전처럼 만든 사인이었던 것이다. 이때 자기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내 인생은 쓸모없는 깨어진 그릇이다.”였던 것이다. 그때 그는 절망가운데서 기도의 무릎을 꿇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의 깨어짐 때문에 내가 너를 택했단다.”라는 음성이었다. 또한, 그 깨어진 그릇같은 자신을 위해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면서 완전히 깨어지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깨어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깨어진 그릇같은 인생을 회복시키신다는 음성이었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로, 그에게 육신의 약함은 더 이상 아무 문제가 되지 못했다. 


더불어 두 가지를 깨닫고 감사를 드렸다. 하나는 자신의 연약한 깨어짐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을 모두 덮어주시고 가려 주시는 주님을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주변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전부 감사거리로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의 깨달음을 통해, 김태훈 선교사는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에티오피아를 더욱 사랑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모든 인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이런 연약함 속에서, 은혜가운데 배우고 깨달으면서 그 삶을 지탱해 가는 것이다. 곤고한 삶의 문제앞에서 연약함이 있어도, 더욱 주를 의지하도록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겸손의 사람으로 빚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최고의 기쁨이 되는 사명자로 사용하시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 알며, 신앙으로 고백하게 될 때, 연약함이 주는 모든 고통은 오히려 신앙의 큰 성숙과 진보를 나타내는 큰 축복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연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약함 속에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